최재형의 애국정신, 연해주에 기념비로 서다

0 2019.08.15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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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100주년추모위원회 우수리스크 기념관에 세워‘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의 기념비와 흉상 제막식이 12일(현지시간) 러시아 우수리스크 최재형기념관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김재윤 전 국회의원, 정병천 국가보훈처 과장, 오성환 블라디보스토크 한국총영사, 안민석 국회의원, 소강석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 최발렌틴 러시아독립유공자후손협회장, 문영숙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 이블라디미르 우수리스크 시의원.
“피눈물로 기도했네 피눈물로 기도했네… 산천이 동하고 바다가 끓는다…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순국100주년추모위원회(공동대표 소강석 안민석 문영숙 김니콜라이)가 지난 12일(현지시간) 개최한 최재형(1860∼1920) 기념비 제막식 추모공연장. 광복 74주년을 앞두고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 최재형기념관에서 애국가와 가곡, 슬프고도 거룩한 창가(唱歌)가 비에 젖어 울려 퍼졌다. 최재형 선생은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한 안중근 의사의 숨은 후원자로 연해주 일대에선 ‘독립운동의 대부’로 통한다. 기념비에는 광복을 형상화한 한반도 모양의 태극기가 새겨졌다. 2.5m 높이 비석의 앞면 오른쪽엔 ‘애국의 혼 민족의 별 최재형’이란 문구가 새겨져 있고, 비석 앞쪽엔 ‘최재형 흉상’도 자리잡았다.

김재윤 전 국회의원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제막식에는 안민석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인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 문영숙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 고려인 동포인 이블라디미르 우수리스크 시의원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소 목사는 “늦게나마 이런 기념비를 세울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조국 대한민국이 있기 때문”이라면서 “오늘 기념비를 세움으로써 애국애족의 정신, 하나님을 위한 믿음이 민족의 광야에 별처럼 빛나기를 바란다”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제막식 참석을 위해 모스크바에서 온 최재형의 손자 최발렌틴(82)씨는 “고려인들은 할아버지를 가슴속에 기억해 내가 ‘최재형의 손자’라고 하면 감격으로 말을 잇지 못하곤 했다”고 회고했다.

창원국악관현악단 김지혜(부산 정관온누리교회) 소리꾼은 유관순 열사가 100년 전 서대문형무소 여옥사(女獄舍) 8번방에서 7명의 동료와 수많은 공포의 밤을 서로 달래고 용기를 얻기 위해 끌어안고 불렀던 결기에 찬 투쟁가를 불렀다. 테너 박주옥 교수(새에덴교회)는 ‘자유의 아리아’를 장엄하게 불러 박수를 받았다.

최재형은 1860년대 조선에 대흉년이 들어 중국, 러시아 등지로 집단 해외 이주를 했던 시대에 함경북도 경원에서 노비 출신 소작인 아버지와 기생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났다. 10세 때 온 가족이 기근을 피해 연해주 ‘지신허’라는 한인 마을에 정착했다. 이듬해 한국인으로는 러시아 학교에 입학한 첫 학생이 됐다. 하지만 형수와의 갈등으로 가출한 뒤 부두를 헤매다 러시아 상선 선원들에게 발견돼 선원이 됐다. 러시아인 선장 부인은 소년에게 세례를 주고 이름을 ‘페치카’(러시아 난로)라고 불렀다.


6년간 상선을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견문을 넓힌 최재형은 18세 땐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상업회사에서 무역과 수공업을 배웠다. 이후 군납사업을 하며 부를 쌓았고, 이렇게 번 돈을 항일 독립운동과 동포 지원에 사용했다. 그가 연해주에 세운 학교가 30개에 달했다. 159년 전 8월 15일 태어난 최재형은 1920년 일본군에 체포돼 순국했다.

내년은 최재형 순국 100년이 되는 해이다. 추모비와 흉상이 세워졌지만 그가 어디에 묻혔는지 아무도 모른다. 유해를 찾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수리스크(러시아)=글·사진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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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 후 첫 주일에 선포장공 김재준 목사가 신문을 읽고 있는 모습. 국민일보DB
“모든 땅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새 나라의 국토개발은 자연환경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체계적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교육정책 수립이 최우선입니다. 의무교육도 필요합니다.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을 위해 누진세를 부담해야죠.”

장공 김재준(1901~1987) 목사가 1945년 8월 19일 기독 청년들에게 선포했던 건국의 구상이다. 당시 김 목사는 조선신학원 원장이었다. 이날은 광복 후 첫 주일이었다. 김 목사는 선린형제회 회원들에게 ‘기독교의 건국이념’을 주제로 새 나라의 청사진을 펼쳤다. 모임은 사실상 예배였다. 같은 해 12월 김 목사는 선린형제회를 모태로 서울 경동교회를 창립했다.

이날 강연은 단행본으로 출판됐지만,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게 많지 않다. 그동안 대중에 알려지지 않았던 책을 임희국 장로회신학대 교수가 2017년 경기도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관장 한동인 장로) 서고에서 발견했다. 임 교수는 ‘1945년 8·15광복, 건국의 이정표를 제시한 장로교회 신학자들’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이 내용을 소개했다.

김재준 목사가 1945년 8월 19일 선린형제회 집회에서 선포했던 ‘기독교의 건국이념’ 단행본 표지. 임희국 교수 제공
김 목사가 꿈꿨던 새 나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신을 이어받은 민주 공화정 국가를 꿈꿨다. 국토는 하나님의 소유라고 규정했다. 그는 “땅은 하나님의 동산으로 도로 상가 공장 주택 관공서 학교의 배치도를 그리되 산과 들의 아름다움을 자연 그대로 보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풍부한 지하자원은 정부와 민간이 협력 개발해 공업화를 추진하고 국토개발을 국외자본에 맡기지 말고 외국인 토지 소유를 제한하라”고 요청했다.

그는 교육정책 수립을 최우선 과제로 정했다. 초등학교 6년, 중등학교 4년 의무교육 필요성도 이런 이유에서 제안했다. 일제강점기 국가주의 교육은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의 학교는 하나님의 통치를 망각한 채 국가 봉공을 위한 부품을 양산하는 공장이었다”면서 “국가주의를 주입하는 교육은 절대 되살아나지 않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정교분리 원칙도 강조했다. 김 목사는 “교회는 신적 기관으로 정부가 교회의 자유와 자치를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교회도 정치에 직접 개입해선 안 된다”며 분명한 선을 그었다.

‘부의 정의로운 분배’도 새 나라의 과제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부자에게 누진세를 부과하고 대재벌의 세습을 막아야 한다”면서 “부자들이 소작인과 노동자의 교육비와 의료비를 책임질 수 있는 세금정책을 펴라”고 주문했다.

일제강점기의 군대를 기반으로 창군하라고 한 점과 친일 전력자 ‘대사면’을 제안한 건 논란이 있을 수 있는 대목이다. 임 교수는 14일 “값싼 용서가 아니라 친일부역자들이 통절한 회개를 할 경우 사면하자는 의미로 해석된다”면서 “세리 삭개오가 회개하며 토색한 게 있다면 4배 갚겠다고 한 것과 같은 회개가 대사면의 전제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김 목사가 품었던 새 나라에 대한 청사진은 1945년 9월 8일부터 미 군정이 시작되면서 논의도 하지 못한 채 무위로 돌아갔다.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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